어릴 때 수학 시간에 가장 싫었던 단원을 꼽으라면 단연 분수였다
숫자인데 숫자 같지 않고 나누는 것 같은데 곱하기도 하고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분수는 이해하지 못한 채 시험을 위해 외우는 존재로 남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분수를 배우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분수는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설명을 제대로 못 만났던 개념이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분수: 이렇게 쉬운 걸 왜 어려워했을까
그때는 왜 분수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초등학교 시절 분수는 늘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정수만 쓰던 수학책에 어느 날 갑자기 숫자 위에 숫자가 얹혀 있었고
선생님은 분모 분자라는 단어를 설명했지만 왜 그런 구조가 필요한지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분수를 계산 대상으로만 배웠다
통분 약분 덧셈 뺄셈
하지만 분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분수는 개념이 아니라 문제 풀이 규칙으로 다가왔다
더 큰 문제는 속도였다
이해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다음 단원으로 넘어갔고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그냥 뒤처지는 구조였다
그때의 나는 분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해할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당시 분수는 수학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틀리면 안 된다는 압박
모르면 부끄럽다는 분위기
질문하면 수업 흐름을 방해할 것 같던 교실
그 모든 것이 분수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어른의 시선으로 다시 배우는 분수의 진짜 정체
어느 날 아이의 문제집을 보다가
분수를 그림으로 설명한 페이지를 유심히 보게 됐다
원 하나를 반으로 나누고
사각형을 네 칸으로 나누는 그림
그 단순한 그림 하나로 분수가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했다
분수는 계산이 아니라 비율이었다
전체 중에서 얼마를 차지하는지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이걸 깨닫는 순간
분모와 분자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배우니
분수는 생활 속에 이미 가득했다
피자 한 판 중 세 조각
물 한 컵의 절반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여덟 시간의 수면
우리는 이미 매일 분수를 사용하며 살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통분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다른 기준을 같은 기준으로 맞추는 작업
이건 수학적 기술이 아니라 소통의 방식에 가까웠다
기준을 맞추지 않으면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
어른의 삶에서도 너무나 익숙한 개념이었다
이제 분수는 더 이상 계산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을 나누어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분수를 다시 배우며 바뀐 공부에 대한 태도
분수를 다시 배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수학 실력이 아니라 공부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예전에는 이해가 안 되면
내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설명이 나에게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니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고
이해될 때까지 멈출 수 있었고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됐다
분수 하나를 이해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로가 됐다
그동안 내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환경이 부족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다른 배움으로도 이어졌다
지구과학 역사 문법 경제 개념까지
예전에 어렵다고 느꼈던 것들이
다시 보면 생각보다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배움은 나이에 따라 닫히는 것이 아니라
방식에 따라 열리고 닫힌다는 걸
분수를 통해 처음으로 실감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분수는
수학 문제가 아니라 기억 속 오해였다
이렇게 쉬운 걸 왜 어려워했을까라는 질문은
사실 이렇게 잘 설명해줬다면 왜 이해 못 했겠냐는 질문에 가깝다
지금 다시 배우는 초등학교 지식은
단순한 복습이 아니다
그 시절 놓쳤던 이해를 회복하는 과정이고
배움에 대한 자존감을 되찾는 시간이다
분수 하나를 이해했을 뿐인데
공부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꽤 크다
어른에게도 초등학교는 필요하다
다만 이번에는
시험이 아니라 이해를 위해 배우는 초등학교다